정읍 신태인 구 도정공장 창고에서 마주한 산업유산의 묵직한 시간

늦가을 오후, 정읍 신태인역 근처를 걷다 길가 너머로 낯선 형태의 건물을 발견했습니다. 먼지가 묻은 회색 벽돌과 낮게 깔린 지붕이 인상적이었고, 주변의 새 건물들 사이에서 오히려 묵직한 존재감을 뿜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금속 문짝이 반쯤 녹슬어 있었고, 문틈 사이로 희미한 곡물 냄새가 남아 있었습니다. 바로 정읍 신태인 구 도정공장 창고였습니다. 한때 이 지역의 쌀을 보관하고 가공하던 산업시설이었지만, 지금은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조용히 남아 있었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잦지 않아 공기마저 느릿했고, 바람이 스칠 때마다 벽돌 틈에서 낮은 울림이 들려왔습니다. 오래된 창틀 너머로 비친 빛이 건물 안쪽으로 스며드는 모습이 묘하게 아름다웠습니다.

 

 

 

 

1. 신태인역에서 도보로 닿는 길

 

정읍 신태인 구 도정공장 창고는 신태인역에서 걸어서 약 7분 거리에 있습니다. 역 앞에서 오른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가면 ‘도정공장길’이라는 작은 표지판이 보이고, 철길 옆 담장을 따라 걷다 보면 곧 회색 벽돌 건물이 나타납니다. 골목 초입에는 오래된 콘크리트 표석이 남아 있어 쉽게 눈에 띕니다. 주변은 주택과 소규모 상가가 섞여 있어 조용한 분위기였고, 평일 낮에는 차량 통행이 거의 없었습니다. 주차는 창고 앞 공터에 2~3대 정도 가능하며, 비포장이라 비가 온 뒤에는 약간 질척입니다. 대중교통으로 방문하는 경우 신태인역이 가장 편리하며, 역에서 내리자마자 들리는 기차 소리가 산업유산의 배경음처럼 느껴졌습니다.

 

 

2. 투박하지만 질감이 살아 있는 공간

 

창고 외벽은 오래된 적벽돌로 이루어져 있었고, 일부 구간은 회칠이 벗겨져 벽돌 본래의 색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입구의 철문은 두껍고 묵직했으며, 손잡이 부분이 손때로 반들거렸습니다. 내부는 현재 출입이 제한되어 있었지만, 창문을 통해 들여다보니 내부 구조가 단순한 직사각형 형태로 남아 있었습니다. 천장은 목재 트러스로 연결되어 있었고, 빛이 틈새로 들어오며 먼지가 천천히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콘크리트 바닥에는 곡물 낙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공간 전체가 시간에 의해 색이 바래 있었습니다. 바람이 들어올 때마다 벽돌 사이에서 미세한 냄새가 풍겨, 오래된 곡식과 기계유의 흔적이 뒤섞인 듯했습니다. 투박했지만 묘하게 정직한 공간이었습니다.

 

 

3. 산업 유산이 지닌 미학

 

이 건물의 진정한 매력은 기능미에 있습니다. 장식이 거의 없고, 단순히 구조와 재료로만 완성된 형태이지만 그 안에서 오히려 강한 미감이 느껴졌습니다. 아치형 창문 위로 흘러내린 빗자국, 벽의 균열 속에 낀 이끼, 낡은 배수관이 만들어내는 선의 조화가 모두 자연스러웠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수확한 쌀이 가공되어 전국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그 흔적을 떠올리며 바라보니 단순한 창고 이상의 의미가 전해졌습니다. 산업화 이전의 농업 중심 시대를 증언하는 공간으로서, 무심히 세워진 벽돌 하나에도 지역의 노동과 생활의 역사가 배어 있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느슨하게 맞물려 있는 듯한 풍경이 인상 깊었습니다.

 

 

4. 주변의 고요한 분위기와 보존의 흔적

 

창고 주변은 잡초가 무성하지만, 일정 구역은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건물의 역사와 지정 이유를 간략히 소개하고 있었고, 글씨체가 낡지 않은 것으로 보아 최근에 보수된 듯했습니다. 외벽 일부는 보존을 위해 새 시멘트로 덧칠되어 있었으나 원형의 질감을 크게 해치지 않았습니다. 창고 뒤편으로는 좁은 수로가 흐르고 있어 여름에는 물소리가 들릴 것 같았습니다. 오후 햇살이 벽면을 비출 때 붉은 벽돌이 깊은 색으로 변하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인공적인 복원이 과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5. 함께 둘러보기 좋은 신태인 일대

 

정읍 신태인 구 도정공장 창고를 둘러본 뒤에는 신태인역 철길 옆 ‘구 신태인제분소’와 ‘구 신태인극장’을 함께 방문하면 좋습니다. 세 곳 모두 도보 10분 거리 안에 있으며, 일제강점기 산업시설의 흔적을 이어주는 루트입니다. 점심시간에는 인근 ‘옛날국수집’에서 식사 후, 역 맞은편 ‘카페 오곡’에서 커피를 마시며 기차가 지나가는 장면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오후에는 정읍천 둔치를 따라 산책을 이어가면 좋고, 해 질 무렵이면 창고 외벽이 붉게 빛나며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하루 코스로 충분히 여유로운 일정이었습니다.

 

 

6. 방문 시 유의사항과 관람 팁

 

창고는 일반 관람객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외부에서만 관찰 가능합니다. 주말에는 포토그래퍼나 학생들이 종종 방문하므로 한적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평일 오전이 적당합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바닥이 진흙으로 변하므로 미끄럼에 주의해야 합니다. 삼각대 촬영은 가능하지만, 주변 차량 진입로를 막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습니다. 해 질 무렵에는 역 방향에서 불빛이 건물 벽면에 비쳐 사진이 가장 잘 나옵니다. 겨울철에는 바람이 강하게 불어 머플러나 장갑을 챙기는 것이 좋습니다. 안내판을 천천히 읽으며 건물의 흔적을 따라가면, 단순한 건축물 이상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마무리

 

정읍 신태인 구 도정공장 창고는 화려하지 않지만, 산업과 농업이 맞닿았던 시기의 현실을 담은 살아 있는 기록처럼 느껴졌습니다. 벽돌의 틈새마다 남아 있는 시간의 흔적이 건물의 가장 큰 매력이었습니다. 주변이 정리되어 있음에도 낡은 질감이 그대로 살아 있어 진정성이 느껴졌습니다. 다시 찾는다면 비 오는 오후, 벽면이 젖어 색이 짙어질 때의 풍경을 보고 싶습니다. 사라져가는 산업 유산의 가치와 현장을 직접 체감하고 싶은 분들께 이곳을 추천드립니다. 오래된 창고가 말없이 전하는 이야기가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원각사 청양 화성면 절,사찰

청주 주성동 언덕 위에서 만나는 목은 이색의 고요한 영당

연화사 제주 제주시 오라이동 절,사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