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키다케별장터에서 만난 인천 근대사의 고요한 잔향
늦여름의 열기가 한결 부드러워진 평일 오후, 인천 중구 율목동의 리키다케별장터를 찾았습니다. 바닷바람이 스치고 나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골목 끝에, 과거의 흔적이 조용히 남아 있었습니다. 주변은 이미 현대식 건물로 둘러싸였지만, 그 사이에 자리한 터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습니다. 일본식 별장이 자리했던 자리라 그런지 땅의 기운이 묘하게 이질적이면서도 차분했습니다. 잔디 사이로 옛 기초석 일부가 남아 있었고, 주변에 심어진 나무들이 그 자리를 지키듯 서 있었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많지 않아 고요했고, 그 정적 속에서 도심의 소음이 멀어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1. 율목동 골목으로 향하는 길
리키다케별장터는 인천 중구 율목동 언덕 끝자락, 자유공원에서 도보로 10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자유공원 남문에서 내려와 율목로를 따라 걷다 보면 오래된 담장 사이로 ‘리키다케별장터’ 안내 표지판이 보입니다. 차량을 이용한다면 인근 공영주차장에 주차한 후 걸어서 이동하는 것이 가장 편했습니다. 골목은 완만한 오르막길로, 길 양쪽에 작은 주택들이 늘어서 있어 옛 인천의 주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도로 폭이 좁지만 인도가 잘 정비되어 있었고, 오후 햇살이 골목 끝까지 비추며 따뜻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자유공원과 이어지는 길이라 함께 둘러보기에도 좋았습니다. 비가 갠 직후라 흙냄새와 벽돌 냄새가 섞인 공기가 한층 깊게 느껴졌습니다.
2. 남겨진 터의 조용한 풍경
터에 도착하니 울타리 안쪽으로 작은 잔디밭과 함께 기초석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건물은 남아 있지 않지만, 돌의 배열과 지형만으로도 당시 별장의 구조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안내문에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실업가 리키다케가 별장으로 사용하던 곳으로, 인천 내 일본인 정착의 초기 흔적 중 하나”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습니다. 평평한 부지 위로 드물게 남은 돌계단이 옛 출입구의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고, 그 주변에는 철쭉과 회양목이 자연스럽게 자라 있었습니다. 벽돌 파편 몇 개가 흙 속에 묻혀 있었는데, 그것이 당시 건물의 잔재라는 생각이 들어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인위적 복원 대신 최소한의 보존만 이루어진 모습이 오히려 공간의 진정성을 살리고 있었습니다.
3. 공간이 전하는 역사적 의미
리키다케별장터는 단순한 옛 건물터가 아니라, 근대 인천의 도시사 속에서 식민지 시기의 흔적을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입니다. 1900년대 초, 인천항 개항 이후 일본 상인과 관료들이 거주하던 지역에 위치해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리키다케는 조선 내 토지 사업과 해운업을 병행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별장은 그가 휴식과 접대를 위해 지은 개인 저택으로, 당시 서양식 구조와 일본식 정원을 결합한 형태였다고 합니다. 현재는 건물은 사라지고 터만 남았지만, 평면 배치의 일부 흔적이 남아 있어 연구 가치가 높습니다. 그 시대의 건축 문화와 사회적 배경을 동시에 엿볼 수 있는 장소로, 인천 근대 유적의 흐름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조용히 서 있는 돌 하나에도 시대의 무게가 담겨 있었습니다.
4. 세심하게 관리된 공간의 인상
별장터는 크지 않지만 정돈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 입구에는 짧은 나무 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발을 들이기 편했고, 잔디가 균등하게 깎여 있었습니다. 안내판과 역사 설명문이 보기 좋게 배치되어 있었고, 표면이 아크릴로 덮여 있어 비나 먼지에도 보호되고 있었습니다. 주변에 작은 벤치가 하나 있어 잠시 앉아 쉬기 좋았습니다. 조용히 앉아 있으면 멀리서 자유공원의 종소리와 차량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습니다. 별다른 시설은 없지만 그 절제된 구성 덕분에 오히려 공간의 의미가 또렷이 느껴졌습니다. 인근 주민이 산책 삼아 들르는 듯했지만, 대부분은 잠시 머물다 조용히 떠났습니다. 도시 한복판에 이런 평온한 자리가 남아 있다는 것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5. 함께 둘러볼 인근 근대 유적
리키다케별장터는 인천 개항기의 흔적들이 밀집한 지역에 있어, 주변 관광과 연계해 둘러보기 좋습니다. 도보로 5분 거리에 인천 개항장 근대건축거리와 한일조계지 경계계단이 있고, 조금 더 내려가면 차이나타운과 자유공원이 이어집니다. 자유공원에서는 인천항과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저녁 무렵에는 노을빛이 도시를 붉게 물들입니다. 또한 인근의 제물포구락부와 송학동 근대건축물들도 방문하면, 리키다케별장터가 속한 시대적 배경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길을 따라 내려오며 오래된 벽돌 담장과 가로등을 보면, 이 지역이 한때 번성했던 근대항 도시였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짧은 거리 안에서도 인천의 개항사와 근대사가 한눈에 이어지는 동선이었습니다.
6. 방문 전 알아두면 좋은 점
리키다케별장터는 상시 개방되어 있으며, 별도의 입장료가 없습니다. 단, 주변 도로 폭이 좁아 차량 진입은 어렵고 인근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주말보다는 평일 오전이나 오후 이른 시간대가 한적합니다. 여름철에는 나무 그늘이 적어 모자와 물을 챙기면 좋고, 비가 온 뒤에는 잔디가 미끄러울 수 있습니다. 별장터 자체는 10분 정도면 둘러볼 수 있지만, 인근 근대거리까지 이어 걸으면 약 1시간 남짓의 산책 코스로 충분합니다. 조용히 관람하며 안내문을 찬찬히 읽는다면, 당시의 사회상과 도시 변화가 자연스럽게 그려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곳은 ‘기억의 장소’이기에, 떠들기보다는 잠시 머물며 시간을 느끼는 마음이 어울렸습니다.
마무리
리키다케별장터는 사라진 건물의 빈자리를 통해 오히려 역사를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남아 있는 것은 돌 몇 개뿐이지만, 그 자리에 스며든 공기와 침묵이 그 어떤 설명보다 강하게 전했습니다. 주변의 근대 거리와 함께 걸으면, 인천의 지난 세기가 지금의 도시로 이어지는 흐름이 또렷이 다가옵니다. 복원이나 장식 대신 ‘비워진 형태’로 남아 있다는 점이 오히려 이곳의 매력이라 느꼈습니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잔디 위로 떨어진 햇살과 바람의 온도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다음에는 겨울 오후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다시 찾아, 그 고요한 터의 또 다른 표정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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